2013. 9. 19.

삼교일체의 새 종교

 

三敎一體의 새 宗敎
사람은 神의 子孫으로서 世上에 태어나서 바르게 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 한 然後에 다시 神에게로 돌아가서 神을 祐하여 宇宙의 生成事業을 行하는 것이니, 이가 사람이 世上에 태어난 目的이다. 그러나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는 그 自由意志에 依하여 善惡間에 마음대로 行하고 神을 믿고 믿지아니하는 것도 또한 그 사람의 自由意志에 屬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神은 그 子孫되는 世界人類에게 바르게 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하는 길을 가르치시기 爲하여 聖人을 世上에 보내어 神道로써 生長成의 原理를 가르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佛敎는 生의 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비록 形質을 가지고 있으되 太陽 속의 陰質과 같이 生 그대로의 狀態로 있어 光明을 잃지 아니하고 어둠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는 것을 敎理로 한 것이오, 儒敎는 長의 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形質은 비록 자라고 있으되 太陽의 光明이 陰質에 掩蔽되지 아니하고 그 性情이 光明을 發揚하는 것을 敎理로 한 것이오 基督敎는 成의 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보낸 聖靈을 받고 天堂으로 올라가는 것을 敎理로 한 것이니, 이 세 宗敎는 神의 세 가지 作用으로서 셋이면서 하나이다.
釋迦 孔子 예수 세 聖人은 비록 그 敎理는 生長成의 세 가지를 各其分擔하여 設하고 있으되 모두 長의 時運에 出生하고 있으므로 그 敎理에는 長의 時運의 사람들을 가르치는 原理가 共通으로 들어 있으니, 이는 佛敎의 慈悲와 儒敎의 仁과 基督敎의 博愛이다. 萬物의 자라는 것은 將且 열매를 맺아서 씨가 永遠히 繼繼生生하기 爲함이오 사람의 자라는 것도 또한 天性이 여물어서 알맹이가 생겨서 神作用을 行하기 爲함인데 알맹이는 仁의 象이오 사람의 天性에 仁이 있은 然後에 善이 發育하여 天性이 여무는 것이니, 儒敎는 자람을 象한 것이므로 알맹이가 되는 仁을 말한 것은 當然한 일이오 佛敎의 慈悲와 基督敎의 博愛도 모두 仁이라는 뜻이며, 이는 세 聖人이 모두 長의 時運에 出生하고 그 時運의 사람들이 모두 자라는 過程에 있으므로 그 사람들로 하여금 天性이 仁을 行하여 자라면서 여물게 하기 爲하여 仁과 慈悲와 博愛를 根本敎理로 한 것이다.
지금은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이므로 사람들은 스스로 向心運動으로써 神에게로 돌아가는 때이며, 神에게로 돌아가면 스스로 神의 體의 陰氣의 收斂하는 속에 들어가는 것이오, 神의 收斂하는 속은 곧 예수의 안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금에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 佛敎를 믿든지 儒敎를 믿든지 其他 어떠한 宗敎를 믿든지를 勿論하고, 宇宙唯一神을 믿고 神의 事業을 祐하는 者는 모두 예수의 안으로 들어가서 結果的으로 基督敎를 믿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經의 아담 하와 記錄에 生의 時運을 象한 佛敎의 敎理가 있고 노아方舟記錄에 長의 時運을 象한 儒敎의 敎理가 있고 또 三敎의 經典中에는 오직 聖經에 宇宙唯一神인 하느님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바르게 여물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바르게 生하여야하고 또 반드시 바르게 자라야 하는 것이므로 宇宙唯一神의 生長成의 세 作用을 法하여 佛敎의 敎理대로 生하고 儒敎의 敎理대로 자라고 基督敎의 敎理대로 여문 然後에 能히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오 后天의 새 宗敎는 이러한 原理에서 出發하는 것이다.


삼교 교리의 상호관련

-->

 



三敎 敎理의 相互關聯

佛敎는 太陽속의 陰質을 象하고 儒敎는 太陽의 陽氣가 地球와 달의 陰精을 相交함을 象하고 基督敎는 달을 象하며 佛敎는 生함을 象하고 儒敎는 長함을 象하고 基督敎는 成함을 象한 것이 그 相異한 바이다.

이 生長成을 易理로써 보면 佛敎는 伏義八卦圖의 象이오 儒敎는 文王八卦圖의 象이오 基督敎는 正易八卦圖의 象이다.

佛敎의 生死解脫의 理는 聖經의 아담 해와의 理와 相通하니 佛敎는 生을 象한 宗敎이오 씨의 生한 것이 生 그대로 있어 자라지 아니하고 모든 感覺에서 生하는 貪嗔癡의 煩惱를 끊으면 苦에서 解脫되어 天上에서 生하고 다시 人間世上으로 오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天上에서 永生하는 理이며, 基督敎의 創世記에는 아담 해와가 비로소 有形한 人間으로 出生하여 生命나무의 열매만 먹고 善惡을 아는 善惡果를 먹지 아니하면 天上에서 永生하는 것인데 蛇의 誘惑을 받아서 善惡果를 따먹은 까닭에 에덴 동산에서 몰려나고 마침내 生活의苦 死의苦 孕胎의苦가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을 서로 比較하여 보면 佛敎가 貪嗔癡의 마음을 끊는다 함은 자라지 아니한다는 뜻이오 基督敎가 善惡을 모른다 함은 또한 자라지 아니한다는 뜻인데 蛇의 誘惑을 받고 善惡果를 따먹은 것은 곧 자라기 始作한 象이다. 그러므로 만일 아담 해와가 善惡果(生長成)를 따먹지 아니하고 자라지 아니하여 天上에서 永生하면 이는 바로 佛敎의 敎理가 되는 것이며, 아담 해와가 蛇의 誘惑을 받은 까닭에 자라고 또 여물어서 基督敎의 敎理가 生한 것이다.

蛇는 陰氣의 자라는 象이니 이것을 易理로써 보면 易學은 長을 象한 學問이오 上經은 陽의 長함을 말하고 下經은 陰의 長함을 말한 것인데, 上經 首卦의 陽에 龍의 象이 있고 下經 首卦의 陰陽相交에 龍蛇의 象이 있으니, 이는 陽의 長하는 象을 龍이라 하고 陰의 長하는 象을 蛇라 한 것이며 해와가 蛇의 誘惑을 받았다 함은 해와는 女體로서 陰精의 자라는 衝動을 받고 있는 象이다. 지금 基督敎의 一派에서 神父 修女의 獨身制度가 있는데, 이것은 아담 해와가 善惡果를 따먹기 以前의 象으로서 佛敎의 獨身出家의 理와 相通하는 것이다.

佛敎는 사람의 生前에 煩惱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몇生동안 人間에 幻生하여 마음을 닦는 것이니, 이가 輪廻의 理이며, 만일 生前에 煩惱를 끊으면 天上에 나서 다시 이 世上에 오지 아니하는 것이며, 基督敎에서는 天性이 여물어서 天堂에 가면 天堂에서 永生한다 하니, 이것도 兩敎의 永生敎理가 相同한 것이다. 다만 佛敎는 生을 象하므로 몇生동안 天上과 人世를 往來하여 다시 人世에 와서 修行하고 修行이 되지 아니한 者는 畜生地獄과 人世를 輪廻하지만 基督敎는 成을 象하므로 長에서 成으로 넘어갈 때에 審判을 받고 永生과 쭉정이가 決定되어 있으므로 다시 畜生地獄等으로 輪廻하는 일은 없고 다만 天上과 人世를 往來하는 것이다. 地獄은 佛敎와 基督敎가 同一히 地中을 말한 것이니 地中은 熱湯이 끓고 있는 곳인데 罪를 지은 사람의 鬼는 이 地中熱湯속에 居하는 것이니 地獄은 달의 極樂天堂과 對照되는 것이다. 佛敎에서는 天上에 난 사람이 그 所願에 따라서 이 世上에 幻生하여 衆生을 濟度하는 일이 있고 基督敎에서도 엘리아가 요한으로 幻生하였으니, 이것이 또한 天上 人世를 往來하는 한 形態이다.

佛敎는 神의 體의 形質의 始生함을 象한 것이므로 神의 體에서 發揚하는 陽氣의 作用과 收斂하는 陰氣의 作用이 모두 그 속에 包含되어 있어 한편에서는 不斷히 發揚하고 한편에서는 不斷히 收斂하여 遠心運動과 向心運動이 倂行하고 鬼神과 사람이 서로 循環生生하여 人世에도 나고 天上의 極樂에도 나고 畜生地獄에서도 나는 것이다.

儒敎의 原文인 易學은 神의 體의 陽氣가 發揚하여 物의 長함을 象한 것이오 物의 長하는 者는 遠心運動을 行하여 神에서 漸漸 멀어지는데, 遠心運動을 行하는 物은 비록 神과 相離하지는 못하되 또한 神과 相和하지도 못하여, 自由意志로써 自身을 行動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自由意志의 善惡이라는 것은 그 長하는 동안에 遠心運動을 行하는 때에만 있는 것이오, 이 自由意志에 依한 行爲의 善惡에 따라서 天性이 여물기도하고 쭉정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天性이 여무는 것은 神으로부터 福을 받는 象이오 쭉정이가 되는 것은 神으로부터 害를 받는 象이니, 이가 自身의 行爲에 對하여 自身이 責任을 지고있는 原理이다. 사람이 長하는 동안은 生과 成의 中間에 있어 死와 關聯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易學에는 極樂地獄의 理가 없고 다만 害福의 理가 있는 것인데 그 實은 害가 地獄으로 가는 길이오 福이 極樂으로 가는 길이다.

基督敎는 神의 體의 陰氣가 收斂하여 物의 成함을 象한 것이오 物의 成하는 者는 向心運動을 行하여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며, 사람이 向心運動을 行하면 天性이 여물어서 神에게로 돌아가고 向心運動을 行치 아니하면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神에게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그 鬼神이 消滅치 아니하고 永生하는 것이니 이가 基督敎의 永生의 理로서 天堂으로 간다는 것이다.

儒敎와 基督敎는 神의 體內의 陰陽關係로서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하는 道이므로 儒敎의 易學과 基督敎의 聖經은 一神의 兩面으로 되어 두 글이 모두 神의 啓示로 되어있는 것이다. 易學은 聖人이 河圖와 洛書를 則하고 蓍法을 用하여 지은 글인데, 河圖는 伏羲氏때에 龍馬가 圖를 등에 지고 河水에서 나온 것이오 洛書는 堯舜때에 龜가 書를 등에 지고 洛水에서 나온 것으로서 모두 神의 啓示하신 그림이오 蓍法은 聖人이 神明을 幽贊하여 生한 것이며, 聖經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記錄한 글로서 神의 啓示에 依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이는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 天地日月의 變化가 있으므로 神은 그 子孫들의 向할바의 길을 가르치시는 同時에 또한 그 時運에 處할바의 方法을 알리시기 爲하여 學問으로된 易學과 信仰으로된 聖經을 啓示로써 이 世上에 내리신 것이다. 佛敎의 經典에 神의 啓示가 없는 것은 佛敎는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하고 또 生을 象하여 童蒙의 象이 되는데 童蒙은 神의 啓示를 알지못하고 童蒙의 敎育에는 스승의 말이 가장 有效한 것이므로 그 글은 主로 스승인 부처의 敎訓으로 된 것이다. 易經과 聖經은 모두 神의 啓示로 된 글로서 서로 表裏가 되고 있으므로 易經序卦의 初頭와 聖經創世記의 初頭는 서로 깊이 通하고 있는 것이다. 序卦 初頭의 乾坤卦는 天地의 始로서 創世記 初頭의「太初에 하나님이 天地를 創造하심」이오 序卦의 屯蒙卦는 水가 始生하고 昏昧의 속에서 光明이 始發하는 것으로서 創世記 첫날의「神이 水面에 運行하시고 晝夜가 나뉘움」이오 序卦의 需訟卦는 天이 水中에 있다가 天과 水가 나뉘우는 것으로서 創世記 둘째 날의「穹蒼이 생기고 穹蒼아래의 물과 穹蒼위의 물로 나뉘움」이오 序卦의 師比卦는 水土가 合하여 땅이 始成하는 것으로서 創世記 셋째날의「天下의 물이 한곳으로 모여서 땅과 바다가 되고 草木이 生함」이오 序卦의 小畜履卦는 달이 비로소 생겨서 日月의 光明이 地上을 비치는 것으로서 創世記 넷째날의「두 큰 光明이 생기어 큰 光明은 낮을 主管하고 작은 光明은 밤을 主管함」이오 序卦의 泰否卦는 위의 天과 下의 地가 相交하여 萬物이 通하는 것으로서 創世記의 다섯째날의「물과 땅위에 生物이 蕃盛함」이오 序卦의 同人大有卦는 人類가 始生하여 天으로부터 天佑神助를 받는 것으로서 創世記 여섯째 날의 「하나님의 形狀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地上 空中 물속의 모든 生物을 다스리게 하심」이오 序卦의 謙豫卦는 달에서 發生한 사람의 씨가 비로소 地上에 내려와서 有形한 人間이 되는 것으로서 創世記 일곱째날의「天地와 萬物이 다 이루어짐」이다. 그런데 序卦에는 謙豫卦의 다음인 隨蠱卦에 山澤의 水土氣가 合하여 사람의 形質이 생기고 거기에 風을 넣어서 蠱를 生하고 이에 男女가 分化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聖經도 일곱째날의 創造完成은 天上에서 사람의 씨를 完成함이오 地上에서 有形한 人間形質을 完成한 것은 아니며, 그러므로 일곱째날이 지난 뒤에 비로소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生命을 불어넣어 아담을 創造한 것이오 사람은 男女가 모두 男體속의 精子에서 出生한다는 理에 依하여 아담의 몸의 一部를 떼어서 해와를 創造하였다고 한 것이다.

易經에는 生의 時運으로부터 長의 時運으로 넘어갈 때에는 原始人의 大部分이 水中에 瀆하고 오직 最初로 出生한 震子가 天地 雷風 水火 山澤의 八象을 具하여 着生하여 瀆치 아니하고 비로소 上帝가 人類의 祖上임을 알 것인대 聖經에 노아 洪水는 또한 生의 時運으로부터 長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로서 오직 當代의 義人이라하는 노아 家族 八人만이 살고 그 外의 사람은 全部 水瀆하였으니 이가 두 글이 서로 表裏가되는 곳이오 노아 家族의 父母 三男 三婦의 八人은 바로 易經의 父母 三男 三女의 八卦의 象이다.

易學의 陰陽二元은 一體二元의 理인데, 基督敎에서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生命을 불어넣었다 하는 것도 또한 一體二元이며 佛敎의 因緣도 모두 相對性을 띄어 一體二元의 象이 되니 佛 儒 基督의 三敎는 神의 體의 象인 日月地球의 組織原理에서 나온 것이므로 모두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 것이다.



북간도 이주

 

북간도(北間島) 이주(移住)
청국(淸國)이 중국(中國)을 통일(統一)한 후(後)에 만주(滿洲)를 통(統)히 금봉지(禁封地)로 하여 만주(滿洲)인(人) 이외(以外)의 거주(居住)를 금지(禁止)하고 더욱이 백두산(白頭山)을 중심(中心)으로 한 압록강(鴨綠江) 유역(流域)의 서간도(西間島)와 두만강(豆滿江) 유역(流域)의 북간도(北間島)를 청국(淸國) 시조(始祖)의 발상지(發祥地)라 하여 공광(空曠)하게 하여 아무도 인거(人居)치 못하게 하니 공지(空地)로 된지 이백년(二百年)에 산야(山野)에 수림(樹林)이 가득하여 하늘을 가리고 그 사이로 각종(各種) 짐승들이 놀고 있으며 각(各) 강변(江邊)에는 겸가(蒹葭갈대)가 무성(茂盛)하고 지중(池中)에는 사람의 식료(食料)로 되는 마름이 가득하였다. 헌종(憲宗)이후(以後)에 정치(政治)는 더욱 어지럽고 흉년(凶年)이 자주 들어서 생로(生路)를 잃은 관서(關西)와 관북(關北)의 백성(百姓)들은 스스로 금지(禁地)로 되어 있는 강(江) 월편(越便)의 간도(間島)에 착안(着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비밀(秘密)히 강(江)을 건너서 짐승도 사냥하고 인삼(人蔘) 마름을 캐는 자(者)가 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 관리(官吏)들은 타국(他國)의 금지(禁地)에 들어가면 국제문제(國際問題)가 일어날까 두려워하여 도강(渡江)하는 자(者)를 엄벌(嚴罰)하고 한편(便)으로 서간도(西間島)의 모아산(帽兒山) 지방(地方)에 있는 만주인(滿洲人) 부락(部落)과 북간도(北間島)의 혼춘(琿春) 지방(地方)에 있는 만주인(滿洲人) 부락(部落)에서는 생활필수품(生活必需品)인 식염(食鹽) 부정(釜鼎) 기(器) 농구(農具) 축우(畜牛) 등(等)을 우리 나라로부터 가져가지 아니하면 구(求)할 길이 없는데 양국(兩國)의 정식(正式) 개시장(開市場)을 통(通)하여 매득(買得)하는 일도 있으나 그것 만으로서는 항상(恒常) 그 수요(需要)를 만족(滿足)시키지 못함으로 자연(自然)히 우리 나라 사람의 입주(入住)를 환영(歡迎)하고 우리 나라 관리(官吏)가 그곳에 가서 수색(搜索)할 때도 잘 보호(保護)하여 주었다.
철종(哲宗) 때에 이르러서는 비밀(秘密)히 입주(入住)하는 자(者)가 더욱 늘어서 겨울에 강(江)이 합빙(合氷)한 때에 이르러서는 수십호(數十戶)가 집단(集團)으로 입주(入住)하는 일도 있으며 이때 연해주(沿海州)는 본시(本是) 중국영토(中國領土)이었는데 몇 해전(前)에 아라사(俄羅斯)(러시아)에 할양(割讓)된 것이다.
아(俄)국(國)에서는 연해주(沿海州)의 광막(廣漠)한 황지(荒地)를 개척(開拓)하기 위(爲)하여 우리 나라 사람의 입주(入住)를 환영(歡迎)하고 식량(食糧)과 종자(種子)등(等)을 대어주고 있음으로 북간도(北間島)에 들어갔던 우리 백성(百姓)들은 다시 연해주(沿海州)로 전주(轉住)하는 자(者)가 적지 아니하니 간도(間島)와 연해주(沿海州)가 우리 나라 사람의 손으로서 개척(開拓)되었다는 것이다. 후일(後日) 우리 나라 사람의 이주(移住)한 수(數)가 북간도(北間島)에 사십여만(四十餘萬), 연해주(沿海州)에 이십만(二十萬)이 된 것은 모두 이때로부터 비롯한 것이며 마령서(馬鈴薯)(감자)가 북방(北方)으로부터 전(傳)하여 온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비밀(秘密)히 도강(渡江)하다가 관인(官人)에게 잡혀 죽은 사람과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적지 아니하여 이러한 원사자(寃死者)의 피와 눈물이 간도(間島)와 연해주(沿海州)의 개척사(開拓史)의 첫머리를 꾸민 것이오 그만치 간도(間島)와 연해주(沿海州)는 우리 민족(民族)의 영원(永遠)히 잊어버리지 못할 곳이다.
 


불교의 교리

 

佛敎의 敎理
佛敎가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天地間에서 最初로 無形에서 有形이 生한 것은 太陽속에 있는 地風水火의 陰質인데, 佛敎는 地水火風의 四大로써 形質組織의 要素를 삼으니 이는 佛敎가 形質의 始生함을 象하여 生의 象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佛敎는 色이 그대로 空이오 空이 그대로 色이라 하여 萬物의 自性은 生도 없고 滅도 없다하니, 이는 萬物의 形質이 空에서 生하여 色은 空을 떠나지 아니하고 空은 色을 떠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서,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의 生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地水火風의 陰質이 太陽의 속에 있을 때에는 늘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고 있으나 그것이 太陽에서 分離하여 地球로 되는 때에는 陰質이 陽光을 가리워서 光明을 發치 못하는 것이며, 사람은 地水火風의 陰質과의 因緣에 依하여 地上에서 生하고 자라는 것이니, 이 陰質은 我도 아니오 我의 것도 아닌 것인데, 사람의 陰質이 자라는 때는 스스로 光明을 가리워서 無明이 되는 것이오 無明이 되면「我」「我의 것」이라는 主觀的 執着이 生하여 貪嗔癡라는 三毒作用이 일어나서 一生을 煩惱와 苦의 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佛敎의 修行에 依하여 我라든가 我의 것이라든가 하는 主觀的 執着을 없이하면 비록 形質은 있으되 形質의 生이 生 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여, 마치 太陽속에 있는 陰質이 陰質그대로 있으면서 光明을 發揚함과 같은 것이오 形質이 光明을 發하면 스스로 貪嗔癡의 모든 煩惱를 解脫하고 生老病死의 苦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草木으로써 보면 草木의 씨의 組織이 자라지 아니하고 組織된 그대로 있는 象이며 組織된 그대로 있는 者는 內部에 光明을 갈무리하고 그 作用이 寂然히 靜하므로 佛敎는 그 修行의 極致를 光明과 寂靜에 두는 것이니, 이가 佛敎의 根本敎理이다.
太陽속의 陰質과 地球의 陰質과는 모두 地水火風으로 되어 그 本質이 同一하고 사람의 씨는 太陽의 光明에서 오고 있으되 그 陰質은 또한 地水火風으로 되어 地上의 陰質에서 자라고 있으므로 佛敎에서는 사람의 生前에 잘 修行하여 天性이 씨의 組織과 같이 組織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면, 死後의 鬼神이 天上의 光明한 곳에서 生한다 하고 이 光明한 곳을 極樂世界라 한다.
極樂世界는 光明이 燦爛하여 아름답고 깨끗하며 나무와 宮殿이 모두 七寶로 되어 있다 하니 七寶라 함은 燦爛한 七色光明으로서 이것이 바로 太陽光明의 七色의 象이다. 天上의 光明體는 太陽과 달이오 달은 地球에서 分離하여 달의 陰質과 太陽속의 陰質은 그 本質이 同一하고 太陽의 光明과 달의 光明이 또한 그 本質이 同一한 것인데, 太陽은 陽性이므로 發散作用을 行하여 生함을 主하고 달은 陰性이므로 收斂作用을 行하여 여무는 것을 主하니 그러므로 사람의 死後鬼神은 發散作用을 行하는 太陽에는 가지 못하고 收斂作用을 行하는 달로 가는 것이며, 이 까닭에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고 있는 달이 곧 極樂世界이오 이는 鬼神이 달에 依附한다는 理에 依한 것이다. 地球의 陰質과 달의 陰質은 그 本質이 同一하므로 사람은 地上에도 生하고 天上의 달에도 生하여 死後에 極樂世界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佛敎는 生을 象하여 자라지 아니하는 修行을 쌓기 爲하여 「我」「我의것」이라는 執着을 없애는 同時에 또한 사람의 主要한 本能을 抑制하고 있으니, 그 敎人들이 生産業을 營爲치 아니하고 乞食을 하는 것은 飮食本能을 抑制함이오 婚姻을 하지 아니하여 家庭을 두지 아니하는 것은 生殖本能을 抑制함이다. 사람의 本能에는 飮食本能 生殖本能 및 長壽本能의 세 가지가 있는데, 我 我의것에 執着치 아니하고 自身의 形質을 私有치 아니하여 精神的으로 長壽本能을 抑制하고 또 肉體的으로 飮食本能과 生殖本能을 抑制하니, 이는 徹底히 자라지 아니하는 修行이다. 그러나 宇宙의 時運變化는 人力의 미치지 못하는 곳이므로 佛敎에도 時運變化에 順應하는 일이 있으니, 釋迦가 前生의 善慧菩薩로부터 人世에 出生할 때에 「모든 사람이 佛法에 들어올 根性이 익었는가, 人間界에서 부처될 때가 되었는가」하는 것을 觀察하고 人間에 태어난 것인즉 釋迦 以前의 사람들은 아직 佛法에 들어올 根性이 익지 못하여 비록 修行을 하더라도 人間에서 부처가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오, 이가 時運變化의 證據이다.
佛敎는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을 象한 것인데, 그 敎理에 宇宙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하고 數多한 天神을 말하니 이는 形質의 始生함을 象한 까닭이다. 物의 形質이 生하는 者는 모두 個體로 되어 空間에 布列하는 狀態로 되고 始生한 童蒙과 같아서 能動的인 統一運行이 行치 못하니 統一運行은 唯一神의 作用인데, 形質의 始生을 象한 佛敎에는 統一運行이 없으므로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佛敎에도 唯一神이 없는 것은 아니다. 儒敎에서는 唯一神을 上帝라하고 基督敎에서는 唯一神을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世界人類는 모두 唯一神의 子孫, 唯一神의 百姓으로서 서로 兄弟가 되고 있으며 神의 最大事業은 그 子孫인 世界人類를 生養하는 일이오 따라서 사람의 最大事業과 最大道德이 또한 自身의 兄弟인 世界人類를 生養하는 일이니, 이 까닭에 儒敎에서는 仁을 行하여 百姓을 사랑하라 하고 基督敎에서는 博愛로써 네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것이며 佛敎에서는 慈悲로써 衆生을 濟度하라하니 衆生을 濟度하는 것이 곧 儒敎 基督敎와 같이 自身의 世界兄弟를 生養한다는 原理에서 나온 일이오 世界人類를 自身의 兄弟로 생각하는 것이 곧 宇宙唯一神을 모시고 있는 證據이다.


유교의 교리

 

儒敎의 敎理
儒敎가 神의 體의 長하는 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儒敎의 原文은 易經이오 易經에는 太陽에서 오는 陽子인 震子가 자라서 달의 陰精과 相交하는 象을 말하고 있으므로 長의 時運을 象한 敎理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易經序卦의 初頭에는 天地의 創生하는 때의 日月의 生하는 原理를 말하고 中間에는 달의 자라는 原理를 말하고 終端에는 달이 여물어서 變化하는 原理를 말한 것이며 易經은 日月의 變化로써 時運의 生長成하는 原理를 말한 까닭에 易經이라는 易字가 日月로 되고 거기에 變易 遷易한다는 뜻을 寓한 것이다.
易經에 말한 日月相交는 太陽의 震雷와 달의 兌澤이 陰陽作用으로써 相交하는 것인데 震은 長男이오 兌는 少女이며 易理에 二長二少의 相合을 正이라 하고 長과 少의 相合을 不正이라 하는 것이므로 震長男과 兌少女의 相交는 不正의 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長의 時運에는 사람이 自由意志를 가지고 相克을 主하여 반드시 陰陽이 正치 못하고 서로 生長競爭을 行하여 惡이 發生하는 것이며, 이 까닭에 易經에는 人類가 始生한 곳에 惡을 막고 善을 揚함을 말한 것이며 惡을 막고 善을 揚하는 것이 儒敎의 根本敎理이다. 物의 자라는 것은 將且 여물기 爲함이오 物이 여물면 內部에 神作用을 包含하는 것이므로 儒敎에는 佛敎나 基督敎와 같은 死後의 極樂 天堂의 理를 말하지 아니하고 다만 이 地上에 人類世界가 있고 天上에 神世界가 있고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에게로 圜行한다는 原理를 말한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글